주말 저녁 편하게 영화 한 편 틀었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라라랜드를 처음 본 날이 딱 그랬습니다. 화려한 오프닝에 눈이 반짝였다가, 중반부 어딘가에서 스르륵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유튜브 요약 영상으로 다시 찾아봤는데, 짧은 분량으로 봤음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그 묘한 경험 때문에 이 영화를 한 번 제대로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레트로 감성이 만들어낸 세계관
라라랜드는 처음 화면이 켜지는 순간부터 요즘 영화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습니다. 감독 데이미언 차젤은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화면 비율을 의도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시네마스코프란 1950~60년대 할리우드 전성기에 유행하던 와이드스크린 촬영 방식으로, 화면 가로 세로 비율이 약 2.39:1에 달해 일반 영화보다 훨씬 넓고 극적인 화면을 만들어냅니다. 그 시절 영화를 직접 본 세대가 아니더라도, 이 비율만으로 왠지 모를 향수가 밀려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여기에 더해 라라랜드는 키라이팅(Key Lighting) 방식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키라이팅이란 피사체에 주 조명을 강하게 집중시켜 다른 배경을 어둡게 가라앉히는 조명 기법으로, 클래식 필름 누아르나 뮤지컬 영화에서 주인공을 극적으로 부각할 때 주로 쓰였습니다. 덕분에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이 춤추는 장면들은 마치 오래된 필름 사진첩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시각적 연출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솔직히 단순합니다. 꿈을 쫓는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 감정이 움직이는 건, 이 레트로 미학이 관객을 자연스럽게 노스탤지어(Nostalgia)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노스탤지어란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이상화된 기억을 동시에 가리키는 심리적 상태로,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것이어도 충분히 촉발될 수 있습니다. 미국 Z세대 사이에서 빌어진 레트로 열풍이 이 영화의 흥행과 맞물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즈라는 소재, 그리고 서사의 균열
라라랜드에서 재즈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닙니다. 세바스찬이 목숨처럼 지키려는 가치이자, 미아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고, 동시에 두 사람을 갈라놓는 갈등의 씨앗이기도 합니다. 세바스찬이 재즈의 역사와 즉흥 연주의 가치를 미아에게 설명하는 장면은 제가 요약 영상으로 봤음에도 꽤 인상 깊었습니다. 재즈 특유의 즉흥성(Improvisation), 즉 악보 없이 연주자가 그 순간의 감정과 호흡으로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특성이 두 사람의 불안정한 관계와 절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라라랜드가 재즈를 정통적으로 다루고 있느냐는 시각은 나뉩니다. 재즈는 본래 흑인 문화에서 탄생한 장르인데, 백인 주인공이 이를 '구원'하려는 시각으로 서사를 끌고 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도 이 지적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세바스찬이 재즈를 대하는 방식이 다소 엘리트적이고 소유적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이를 두고 장르적 한계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영화의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라라랜드가 대중의 공감을 얻은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네마스코프와 키라이팅으로 구현한 클래식 뮤지컬 특유의 시각적 감수성
- 즉흥성을 핵심 미학으로 삼는 재즈를 통한 인물의 가치관 표현
- 꿈과 현실 사이의 균열을 봉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서사 구조
- 노스탤지아를 자극하는 레트로 미학과 현대 청춘의 고민이 결합된 주제
음악 감독 저스틴 허위츠가 데이미언 차젤과 하버드 동문으로, 라라랜드의 음악은 위플래쉬 성공 이전부터 오래 준비된 결과물이라는 점도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수상했을 만큼,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를 이끄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출처: 아카데미 공식 웹사이트).
엔딩 해석,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
라라랜드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쟁은 엔딩입니다. 미아는 스타가 되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재즈 바를 엽니다. 각자의 꿈은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둘은 함께하지 않습니다. 미아가 우연히 세바스찬의 바에 들어서고, 그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서 스크린에는 '만약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을 그린 가상의 시퀀스가 펼쳐집니다. 저는 이 장면을 요약 영상으로 봤을 때 솔직히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분량으로 따지면 몇 분 남짓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수년의 감정이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그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응원하며 각자의 꿈을 이뤘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이라고 해석합니다. 반면 새드엔딩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두 사람이 눈빛으로 나누는 마지막 작별이 어떤 대사보다 슬프다고 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열린 구조를 의도했다고 봅니다. 그 모호함 자체가 라라랜드의 가장 영리한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미아의 오디션 장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심사위원 앞에서 즉흥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이 장면은, 배우 지망생이 오디션장에서 겪는 긴장과 무너짐,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용기를 가장 진솔하게 담아낸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엠마 스톤이 이 장면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수상 기록이 아니라, 이 장면이 지닌 감정적 진폭이 업계 전문가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영화 속 오디션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미국영화협회(AFI) 보고서에서도 꾸준히 언급되어 왔습니다(출처: 미국영화협회(AFI)).
결국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겁니다. 꿈을 이루는 것과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그 당연하고도 씁쓸한 사실을 이 영화는 화려한 뮤지컬 넘버로 포장하지 않고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중간에 잠들었다가 요약 영상으로 다시 봤음에도 여운이 오래 남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라라랜드를 제대로 완주하지 못했다면, 이번 주말에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맞춰 보시길 권합니다. 중반부가 잔잔하게 가라앉는다고 느껴지더라도, 그 호흡을 견뎌낸 뒤에 찾아오는 엔딩의 무게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