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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부림사건, 헌법, 원칙주의)

by 무명_moomyoung 2026. 6. 24.

1981년, 전두환 군부 정권이 무고한 시민 22명을 고문·조작해 기소한 '부림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처음에는 정의감 넘치는 법정 드라마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을 채운 건 영웅이 아니라, 그저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부림사건, 읽은 책이 죄가 된 시대

1981년 부산에서 벌어진 부림사건은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과 청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된 사건입니다. 국가보안법이란 반국가단체 활동을 처벌하는 법률로, 당시에는 이것이 형법이나 헌법보다 사실상 상위법처럼 작동했습니다. 쉽게 말해, 특정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의 적이 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당시 '불온서적(不穩書籍)'으로 지목된 목록입니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학교 필독서 목록에 당연히 올라 있는 책들입니다. 저도 학창 시절에 이 책들 중 일부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사실을 1981년에 당국이 알았다면 어땠을까 싶어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고문(拷問)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은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극심한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가해 원하는 진술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영화 속 박진우가 온몸에 상흔을 안고 법정에 서는 장면은 허구가 아니라 당시 실제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실제로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난 2014년이 되어서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출처: 법원 재판 기록 - 국가법령정보센터).

돈 버는 변호사에서 원칙주의자로

영화에서 제가 가장 깊이 감정이입을 했던 부분은 사실 거창한 법정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부동산 등기 전문으로 돈을 긁어모으던 송우석이 단골 국밥집 아주머니의 간절한 눈빛 하나에 흔들리는 그 찰나였습니다. 저도 솔직히 말하면 뉴스에서 억울한 사건을 볼 때마다 "세상이 원래 그렇지"라며 넘겨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장면에서 제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원칙주의자(原則主義者)란 상황에 따라 타협하지 않고 규범과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려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화의 흥미로운 역설은 처음에 원칙주의자처럼 보이지 않던 송우석이 오히려 진정한 원칙주의자로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형량 타협이 아닌 완전한 무죄를 목표로 삼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이었지만, 헌법 제1조 2항이라는 가장 단단한 원칙 하나로 법정을 압박합니다.

이 변화의 과정은 성찰(省察), 즉 자기 자신과 주변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행위에서 시작됩니다. 영화가 명시적으로 지적하는 바도 이것입니다. 성찰이 없으면 사람은 그저 사회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 만인이 만인에 맞서 싸우는 홉스적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1981년 부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헌법 제1조 2항이 법정에서 무기가 된 이유

"국가가 뭔지 몰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 저는 이 대사를 들었을 때 극장 의자에 등이 딱 붙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반응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합니다. 법치주의(法治主義)란 국가 권력도 예외 없이 법에 따라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강한 권력이라도 국민이 만든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송우석이 법정에서 이 조항을 꺼내 든 것은 단순한 수사적 제스처가 아니라, 재판의 전제 자체를 뒤흔드는 본질적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법 구조의 모순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헌법보다 우선 적용되는 구조였습니다.
  • 고문으로 만들어진 자백이 법정 증거로 활용되었습니다.
  • 독서 행위 자체가 '이적 행위(利敵行爲)'의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 변호인의 방어권 행사가 현실적으로 극도로 제한되었습니다.

이적 행위란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돕는 행위를 말하는 법률 용어입니다. 문제는 그 판단 기준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느냐입니다. 그 기준이 권력의 손에 쥐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부림사건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도 과거 국가보안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또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출처: 헌법재판소).

영화의 한계와 그럼에도 남는 것

제가 이 영화에서 아쉽게 느낀 부분도 솔직하게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상업 영화의 서사 구조상 선악 대립이 지나치게 선명합니다. 정의로운 주인공과 악랄한 공안 검사, 양 측이 너무 깔끔하게 나뉘어 있어서 당시 실제 사회의 복잡한 결을 다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용기 있게 저항한 것도, 악의적으로 탄압한 것도 아닌, 그저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택한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그 회색 지대가 영화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의심(疑心)'을 권장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믿는 신념에 대해 건강한 의심을 품지 않는 순간, 그 신념은 도그마(교조)가 됩니다. 도그마란 비판적 검토 없이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믿음 체계를 말하며, 이것이 국가 권력과 결합했을 때 가장 위험한 형태의 억압이 탄생합니다. 영화는 그 위험성을 과거의 이야기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변호인이 묻는 건 이겁니다. 당신은 지금 불의 앞에서 어떻게 서 있습니까.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거창한 영웅이 되겠다는 다짐보다, 내 주변에서 마주치는 작은 부조리 앞에서 한 번이라도 더 목소리를 내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는 걸 송우석이 가르쳐 줬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 바로 보시길 권합니다. 기왕이면 대사 한 줄 한 줄을 흘려듣지 말고, 그 맥락까지 짚어가며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영화 감상과 개인적인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법률적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ekugpEQS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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