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어온 '선'과 '악'은 과연 절대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권력이 만들어낸 프레임일까요?" 익숙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완벽하게 뒤집으며 세상이 규정한 편견에 묵직한 돌직구를 던지는 영화, 바로 <위키드>입니다. 지배층의 선동과 대중의 이기심 속에서 사악한 마녀로 박제되어야 했던 엘파바의 이야기를 니체의 철학적 시선과 함께 방구석 1열에서 깊이 있게 파헤쳐 보았습니다.

프레임을 부수는 초록빛 마녀, 선악의 경계를 뒤흔들다
영화 <위키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완벽하게 뒤집으며,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권력에 의해 어떻게 가공되고 생산되는지 날카롭게 질문합니다. 작품은 "서쪽의 사악한 마녀 엘파바는 처음부터 사악했을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포문을 열며 프리드리히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냅니다. 오즈의 마법사로 대표되는 지배 계층은 자신들의 취약한 통제력을 감추고 대중을 결속시키기 위해 지적 동물을 탄압하고, 남들과 다른 녹색 피부와 비범한 능력을 지닌 엘파바를 공공의 적이자 '사악한 마녀'로 낙인찍습니다. 결국 사회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자는 '착함'으로 포장되고, 기득권의 불의에 저항하며 체제 밖으로 나아가는 뛰어난 개인은 '악함'으로 규정당하는 씁쓸한 현실을 풍자합니다. 이는 선악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생존 본능과 권력 유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본질을 관객에게 관통시키며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방구석 1열에서 마주한 전율, 다름을 인정하는 춤의 연대
이 위대한 뮤지컬 대작을 극장이 아닌 OTT 플랫폼을 통해 집에서 홀로 관람한 경험은 무척이나 특별했습니다. 헤드폰을 착용하고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서 몰입하자, 셔즈 유니버시티의 화려한 색감과 웅장한 넘버들이 홈 시네마 환경을 가득 채우며 깊은 전율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클럽 장면에서 초록색 피부라는 이유로 대중에게 경멸과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춤을 추는 엘파바의 모습은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었습니다. 뒤이어 인기에만 집착하던 글린다가 기꺼이 엘파바의 서툰 춤에 동참하는 순간은, 보편적 대중성이 소수의 이질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마침내 하나로 융화되는 연대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깊은 감동을 안겼습니다. 화면과 가까운 환경 덕분에 세속적인 욕망 뒤에 감춰진 글린다의 쓸쓸한 열등감과, 세상의 모든 억압을 뚫고 빗자루를 치켜드는 엘파바의 단단하고도 비장한 눈빛을 밀도 있게 포착할 수 있었던 최고의 관람이었습니다.
원작의 날카로운 결핍과 세련된 뮤지컬 각색 사이의 변주
<위키드>는 작가의 개인적인 결핍과 동성애자로서 겪은 차별의 경험이 엘파바라는 독창적인 캐릭터에 투영되어 한층 깊은 서사를 자랑합니다. 원작 소설 속 엘파바는 마법이 아닌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10년간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마법사 암살을 시도하는 거칠고 날 선 사회 혁명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소설 속 피예로는 유부남으로서 처자식을 버리고 엘파바와 동거하다 살해당하는 잔혹한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따릅니다. 그러나 유니버설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영화와 뮤지컬 버전에서는 이러한 지나치게 어둡고 비극적인 본질을 대중적인 삼각관계 로맨스와 세련된 판타지 활극으로 부드럽게 순화시켰습니다. 비록 원작 고유의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이 일부 희석되었다는 마니아적인 아쉬움은 남지만, 글린다의 'Popular'와 엘파바의 'Defying Gravity' 등 상징적인 넘버들과 환상적인 비주얼을 통해 대중성을 획득하며 실패했던 여타 뮤지컬 영화의 명성을 보란 듯이 회복한 웰메이드 대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