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속편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전편 킹스맨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은 어차피 그 그늘 아래 머물 거라는 예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드는 감정이 꽤 복잡했습니다. 잘 만든 장면과 아쉬운 장면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영화였고, 그 간극이 오히려 이 작품을 두고 할 말이 많아지게 만들었습니다.

세계관 확장: 스테이츠맨의 등장과 해리의 귀환
킹스맨: 골든 서클은 영국 킹스맨의 형제 조직인 미국 스테이츠맨을 전면에 내세우며 세계관을 넓힙니다. 스테이츠맨은 킹스맨의 첩보 스타일과 의도적으로 대비됩니다. 양복과 우산 대신 카우보이모자와 올가미(라쏘)를 활용한 액션은 시각적으로 꽤 신선했고, 제가 직접 보면서도 "이거 꽤 재밌는 설정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초반 킹스맨 본부가 마약 조직 골든 서클의 공격으로 폭파되면서, 생존자 에그시와 멀린은 최후의 수칙에 따라 스테이츠맨 본부로 향합니다. 여기서 '최후의 수칙'이란 조직이 궤멸 위기에 처했을 때 작동하는 비상 프로토콜로, 쉽게 말해 조직의 마지막 보루로 향하도록 설계된 비상 탈출 플랜입니다.
그리고 스테이츠맨 본부에서 에그시는 전편에서 죽은 줄 알았던 해리 하트와 재회합니다. 해리는 살아있었지만 기억상실증, 즉 역행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 상태였습니다. 역행성 기억상실이란 특정 사건 이전의 기억이 손상되는 증상으로, 해리의 경우 스파이로서의 정체성과 훈련 기억 전체가 소거된 상태였습니다. 전편 팬 입장에서는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오는 장면이었습니다.
해리의 기억을 되찾는 방법도 눈에 띕니다. 에그시는 해리가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와 같은 견종을 선물하고, 이 감각적 자극이 기억 회복의 트리거가 됩니다. 이는 신경과학에서 말하는 감각 기억(Sensory Memory) 이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감각 기억이란 특정 냄새, 소리, 촉감 등의 감각 자극이 뇌에 저장된 과거 기억을 끌어올리는 현상을 뜻하는데, 실제로 후각과 촉각은 편도체와 해마를 거쳐 감정 기억을 강하게 활성화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뇌연구원).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계관 확장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킹스맨 본부 폭파 후 스테이츠맨이라는 새로운 조직 등장
- 카우보이 테마 기반의 스테이츠맨 액션 스타일 (올가미·전기 채찍 등)
- 기억상실 상태의 해리 하트 귀환과 감각 기억을 통한 회복
- 마약 조직 골든 서클의 수장 포피와 대통령의 협상 구도
다만 이 세계관 확장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스테이츠맨 캐릭터들은 스크린 타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그 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해리의 기억 회복 과정도 저는 조금 허탈했습니다. 극적 장치 치고는 지나치게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니 그 과정이 서사적 설득력보다 편의주의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멀린의 희생: 소포모어 징크스를 넘지 못한 이유
이 영화에서 제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단연 멀린의 희생입니다. 에그시와 해리가 골든 서클 기지에 침투하는 작전 중, 멀린은 지뢰를 밟고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는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지체 없이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열창하며 적들의 시선을 끌다 스스로 폭발을 선택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편에서 냉철하고 묵묵하게 에그시를 뒤에서 서포트하던 멀린이 그렇게 담담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줄은 몰랐거든요. 비장하면서도 전혀 호들갑이 없는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도 과거에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겪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그 장면이 단순한 영화 속 클리셰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온 힘을 쏟는 그 뒷모습에서, 슬픔을 넘어선 어떤 숭고함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한동안 컨트리 로드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명장면이 오히려 이 영화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속편은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소포모어 징크스란 첫 작품에서 큰 성공을 거둔 창작자나 작품이 두 번째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속설이 콘텐츠 산업에서 반복적으로 실증되는 현상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작품이 단순히 '전편만 못한 속편'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스케일만 키운 속편'이라고 봅니다. 전편의 핵심 미덕은 에그시의 성장 서사와 신사로서의 품격이라는 주제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킹스맨 요원 전원을 서사적 소모품처럼 허무하게 처리하고, 더 자극적인 연출에만 집착합니다. 인육 햄버거 같은 기괴한 설정은 전편의 B급 감성이 주던 유쾌한 충격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그냥 불쾌했습니다.
영화 흥행 면에서도 이 흐름은 수치로 확인됩니다. 킹스맨: 골든 서클은 전 세계 누적 흥행 수익 약 4억 1천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전편 킹스맨: 시크릿 서비스의 4억 1,400만 달러와 거의 동일한 수준입니다. 제작비가 전편 대비 대폭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상업적으로도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출처: Box Office Mojo).
제 경험상 이런 유형의 속편은 대개 두 가지 실수 중 하나를 범합니다. 전편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반대로 전편의 정체성을 버리고 스케일만 키우거나. 킹스맨: 골든 서클은 후자를 선택했고, 그 결과 멀린의 희생 장면이라는 진심 어린 명장면을 품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서사 완성도는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 됐습니다.
킹스맨: 골든 서클은 분명 볼거리는 있는 영화입니다. 멀린의 마지막 장면 하나만으로도 극장을 찾은 값어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편이 좋았던 분일수록 오히려 실망감이 클 수 있습니다. 속편에 기대가 크신 분이라면, 멀린의 희생 장면에 집중하되 전반적인 서사에는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보시길 권합니다. 반대로 액션 연출과 세계관 확장 자체를 즐기는 분이라면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