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5 청설 (차별 현실, 방황 공감, 수어 연출) 말 한마디 없이도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요. 2024년 개봉한 한국 영화 청설은 그 질문에 수어와 표정만으로 답합니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대사 없는 장면들이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꿈 없이 방황하던 청년 용준과 동생을 올림픽에 보내려는 코치 여름의 이야기는, 제가 요즘 가장 무겁게 안고 있는 고민과 묘하게 겹쳐 있었습니다.차별 현실: 수영장 한쪽에 쌓인 편견들혹시 장애인 차별이 드라마 속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청설은 그 생각을 첫 장면부터 조용히 깨버립니다.영화는 청각 장애인 수영 선수들이 일반 수영장을 쓰려 하자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우리 아이들이랑 같은 물을 쓰게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 2026. 6. 13. 오만과 편견 (첫인상, 편견, 내면의 진가) 솔직히 처음에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이건 그냥 19세기 로맨스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제가 실제로 겪었던 직장 내 편견 사건이 자꾸 겹쳐 보이더군요. 제인 오스틴의 서사는 단순한 신분 연애물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 편향이 관계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200년도 전에 정밀하게 해부한 작품이었습니다.첫인상이라는 함정, 인지 편향의 작동 방식저도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게 이후 판단 전체를 지배합니다. 무뚝뚝한 말투와 차가운 인상을 가진 동료가 팀에 합류했을 때, 저는 주변에서 도는 소문과 그 단편적인 태도만으로 그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분류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그가 밤새 다른 팀원들의 실수를 조용히 수습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의.. 2026. 6. 12. 널 기다리며 (복수의 서사, 사법 한계, 카타르시스) 법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희주는 살인마가 될 필요가 없었을까요? 저도 살면서 명백히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가슴을 쳤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치밀었던 "나도 똑같이 받아쳐줄까"라는 충동을 억누르며 억지로 화를 삼켰던 기억이 있는지라, 영화 '널 기다리며' 속 희주의 선택이 결코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복수의 서사, 15년이 만들어낸 차가운 설계연쇄살인범 기범은 증거 불충분으로 고작 징역 15년을 선고받습니다. 피해자 가족인 희주에게 그 15년은 복수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출소한 기범을 다시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희주가 택한 방식은, 기범의 살해 수법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었습니다.여기서 '모방 범죄(copycat crime)'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2026. 6. 12. 이전 1 2 3 다음